이제 플루타르코스(채식인)의 『도덕론』에서 건전한 추론과 긍정적인 사고방식, 내면의 만족을 통해 인생의 도전에 대처하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마음의 만족에 대하여
『재물, 명성, 궁정의 권력을, 있을 때는 즐기지만 없을 때는 그것에 영원히 초연하지 않는 한, 어떻게 마음이 편하거나 평온한 삶을 살게 도움을 줄까요? 영혼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경계를 벗어나면 그것을 재빨리 억제하고, 영혼이 실제 위치에서 곤두박질치게 허용하지 않는, 이성의 오랜 훈련과 연습 외에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할까요?
크세노폰이 충고한 대로 특히 번영할 때 신들을 기억하고 공경해야 하며,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곤경에 처할 때, 이미 우리의 안녕을 빌어 주는 존재이자 친구로서 신들을 자신 있게 부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들은 문제가 닥치기 전에 대처법을 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오래전에 그걸 사용할 준비를 하면 더 효과적일 겁니다. 개들이 모든 소리에 흥분하고, 익숙한 목소리만이 진정시키듯이, 영혼의 흥분을 억제하기 위해, 친숙하고 잘 알려진 논증을 대비하지 않는 한, 영혼의 거친 격정을 가라앉히는 것도 쉽지 않죠. […]』
『온갖 삶에 대한 그러한 만족감과 관점의 변화는 이성의 활약을 불러옵니다. 알렉산더는 아낙사르코스로부터 무한 수의 세계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을 흘렸는데, 친구들이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세계의 수가 무한한데, 내가 하나도 정복하지 못한 것은, 눈물 흘릴 문제가 아닌가?」라고 대답했죠. 그러나 지갑과 낡은 망토밖에 없었던 크라테스는, 평생을 축제처럼 농담과 웃음으로 살았습니다. […]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서 친구들과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파에톤은, 하늘로 올라갔을 때, 아무도 아버지의 말과 전차를 주지 않았기에 울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발이 발에 맞추는 것이지, 발이 신발에 맞추는 것이 아니듯, 마찬가지로 성품과 삶도 비슷합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최고의 삶을 선택한 사람에게 달콤하게 보이는 것은 관습이 아니라, 의식이 그 삶을 가장 훌륭하고 달콤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만족의 샘을 깨끗이 하여, 외적인 것에서 가장 좋은 면을 보면서, 우리의 유익이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