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한국어
  • English
  • 正體中文
  • 简体中文
  • Deutsch
  • Español
  • Français
  • Magyar
  • 日本語
  • 한국어
  • Монгол хэл
  • Âu Lạc
  • български
  • Bahasa Melayu
  • فارسی
  • Português
  • Română
  • Bahasa Indonesia
  • ไทย
  • العربية
  • Čeština
  • ਪੰਜਾਬੀ
  • Русский
  • తెలుగు లిపి
  • हिन्दी
  • Polski
  • Italiano
  • Wikang Tagalog
  • Українська Мова
  • 기타
  • English
  • 正體中文
  • 简体中文
  • Deutsch
  • Español
  • Français
  • Magyar
  • 日本語
  • 한국어
  • Монгол хэл
  • Âu Lạc
  • български
  • Bahasa Melayu
  • فارسی
  • Português
  • Română
  • Bahasa Indonesia
  • ไทย
  • العربية
  • Čeština
  • ਪੰਜਾਬੀ
  • Русский
  • తెలుగు లిపి
  • हिन्दी
  • Polski
  • Italiano
  • Wikang Tagalog
  • Українська Мова
  • 기타
제목
내용
다음 동영상
 

스승은 가장 외로운 자리이다, 11부 중 4부

내용 요약
다운로드 Docx
더보기

어떤 사람들은‍ 와서 오랫동안‍ 머물기가 어렵죠. 때론 자영업을 하는데‍ 직원이 없어서‍ 직접 다 해야 하죠. 세상에서 살아가고 성공을‍ 위해 열심히 해야 돼요. 잘 돌아가길 바라요. 시간이 있을 때‍ 다시 오고요. (감사합니다)‍ 잊지 않을게요.

통역이 잘 되나요?‍ (약간이요)‍ 좋아요. 가기 전에 요청할 게‍ 있나요? 이게 좋아요?‍ 지금은 그게 다지만‍ 맛이 좋아요. 절반은 여러분 거예요. 이걸 안 먹었나요?‍ 여보세요? 이미 갔군요. (아닙니다, 스승님)‍ 깨끗해요. 아직 안 먹었어요.

여기 있어요. 하루만 왔다 가는 사람 또 있나요?‍ 다른 사람은요? 당신도요?‍ 또 있나요? 없어요?‍ 당신은 오래 머무나요?‍ 다들 여기 오래 머무나요?‍ 당신이 물어봐요. 이 두 사람뿐이군요. (네)‍ 네, 좋아요. 서로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확인해 보세요. 이 세상의 언어는‍ 문제가 많지요. 여기 보세요. 여러분은 내가‍ 남긴 음식을 다 먹었군요. 나눠 먹어요. 원하면 샐러드도 좀 먹고요. 이렇게요. 건강에 좋아요.

여러분이 너무 일찍 가야‍ 해서 안 됐네요. 드세요. 허나 기쁘기도 해요. 적어도 날 한번 봤잖아요. 많은 이가 1분도 못 봐요. 1초도 못 보죠. 불가능해요. 어울락(베트남)과 중국 같은‍ 곳의 사람들은…‍ 감동적인 사연들이 많아요. 나도 알지만 이 세상에서‍ 난 많이 도울 수가 없어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죠.

내가 이태리에서‍ 패션쇼를 했을 때, 폴란드와 헝가리의‍ 몇몇 이들은 돈이 없어서‍ 못 올 상황이었죠. 허나 오고 싶어 했죠. 내가‍ 드물게 유럽에 간 거니까요. 매우 드문 기회였죠. 해서 그들은 폴란드에서 헝가리까지, 또 이태리까지‍ 차를 얻어 타고 왔어요. 단지 날 보려고요.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거기 서서 마냥 울고‍ 또 울었어요. 나는 『무슨 일 있나요?‍ 왜 그래요? 세상이‍ 끝나기라도 했나요?』 했죠. 아니, 소원이 이뤄져서‍ 너무 기뻤던 거죠.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지금 내가 웃으며‍ 말하고 있고‍ 이미 지난 일이지만‍ 나도 눈물이 나요. 속으로 울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난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 내 상황과 내 건강, 내 시간, 내 재정 내에서요. 그리고 세상의 상황에 따라‍ 난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내 원칙 중 많은‍ 부분을 희생했어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 자신의 선한 본성을‍ 상기시키고, 선하고‍ 도덕적으로 살며 신을 다시‍ 기억하도록 일깨우려고요. 내가 나가서 나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나 대신‍ 말해야 하죠. 가령 『여기 보세요. 이 스승님은‍ 히말라야에서 오셨는데‍ 명상을 많이 하시고 이미 성불하셨어요』‍ 기타 등등이요. 한편으론‍ 그건 진실이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내가 밖에 나가서 말할 때‍ 『당신은 부처예요?』‍ 같은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받으면 당혹스럽죠. 허나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내 안에 있는 부처를‍ 포착하지 못하겠어요.

우리는 자신의 불성을‍ 봐야 한다고, 불성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그 모든 말들을‍ 하면서도요. 그건 묘사할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러고 나면‍ 불성이 뭔지는 이미‍ 이해했겠지만, 우린 그걸 놓쳐요. 뭔가를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그걸 잃게 되고‍ 부처를 모르게 돼요. 그렇다고 정말 잃는다는 건‍ 아니고, 불성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이‍ 사라지면서‍ 더는 자신이 부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데 그 순간에도 여전히‍ 자신을 부처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말도 안돼요. 그건 우리가 마야의 길을‍ 따랐음을 의미해요. 에고가, 개인이 스스로‍ 자신이 부처라고 생각하는‍ 그런 일은‍ 원래 없으니까요. 부처가 된 순간부터‍ 그 자신과 우주적 힘 사이에‍ 더는 그러한 분리가 없죠. 만일 여러분이 여전히‍ 자신이 깨달은 사람이고‍ 성불한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그럼‍ 여러분은 끝이죠. 끝난 거예요. 마귀에 홀린 겁니다. 정말로 그래요.

무슨 얘길 하고 있었죠?‍ 왜 부처 얘길 하게 됐죠?‍ 뭣 때문이죠?‍ 아까 무슨 얘길 했나요?‍ (스승님을 뵈러 온‍ 폴란드인들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 뒤엔요?‍ (속으로 우신다고 하셨죠)‍ 속으로 운다고요. 외적인 얘긴 뭐였죠?‍ (세상으로 나가 최선을‍ 다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오, 네, 그래요. 세상으로 나가는 얘길 했죠. 네. 이제 알겠어요.

나를 무척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난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 아마도 계속 최선을‍ 다할 테지만‍ 모든 건 시간이 걸려요. 꽃들도 때가 되어야만‍ 꽃을 피우죠. 내가 매일 밖에 나가‍ 강연을 할 순 없어요. 강요해서 억지로 하듯이요. 그런 건 가끔 한 번씩‍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강연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녜요. 때가 되어‍ 꽃이 피어나는 거죠.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과 향기로부터‍ 이로움을 얻을 거예요. 어떤 이들은 계속 나한테‍ 여기저기 와달라고 하지만‍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또한, 밖으로 나가면‍, 나 자신을 광고해야‍ 하는데‍ 그것도 나로선‍ 무척 당황스러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미리 가서 얘기해야 하죠.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부처님이 오십니다!‍ 알고 계시나요?』‍ 그런 식으로요. 그래서 어떤 식이든‍ 내 개인적으론 상당히‍ 당혹스럽죠. 겸손에 대한‍ 내 원칙에 위배되죠. 허나 그마저도 난 희생했죠. 내가 아는 것, 내가 아는 한에서 최고의‍ 것을 세상에 알려주기 위해‍ 마지막 하나까지도 희생했죠.

허나 그래도,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자주‍ 할 수는 없어요. 하루 한 뒤에‍ 또 그다음 날 계속하며‍ 여기저기로 다닐 순 없죠.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게 쉽진 않아요. 예를 들어, 여기를 보세요. 여러분 중 다수가‍ 새 입문자들이죠?‍ 혹은 내가 처음 어떤 곳에‍ 가서 강연을 하면 전부가‍ 새 입문자들이죠. 새 입문자들이 우리 단체에‍ 막 합류했다면‍ 그들이 약간 성장할 때까지‍ 그들을 돌볼 시간을‍ 가져야 해요. 그런 뒤에 새사람들을‍ 받을 수 있죠. 여러분처럼‍ 다른 수단을 통해 알고‍ 합류한 게 아니라면요. 예를 들어,‍ 여러분의 친구가‍ 여러분에게‍ 소개를 해줬거나‍ 테이프나 잡지나‍ 책을 빌려줘서‍ 여러분이 보고 가르침에‍ 흠뻑 빠지게 됐고,‍ 그래서 비건이 되었고‍ 이미 가르침에‍ 몰두하게 됐다면‍ 그땐 와도 괜찮아요. 신참자이긴 해도‍ 완전 초심자는 아니라서‍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죠. 그러니 괜찮아요.

허나 내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영토에 가서‍ 강연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모집하면‍ 난 시간을 갖고 그들이‍ 성장하게 해줘야 해요. 그들을 돌봐주거나‍ 해야 하죠. 안 그럼 그들은 실패해요. 사회의 압력을 받아‍ 금방 떨어져 나갑니다. 그래서, 강연을 무조건‍ 계속해 나갈 순 없어요. 갓 태어난 신생아들을‍ 돌보지 않고서요. 매일‍ 아기를 낳을 순 없죠. 그럼 갓 태어난 아기들을‍ 돌볼 시간이 없을 거예요. 그래서 신이 매일 아기를‍ 낳게 하지 않고 1년에‍ 한 번만 낳게 하신 거죠. 최대 1년에 한 번이죠. 그러니, 어떤 식으로‍ 안배된 건지 알겠죠. 부모는 신생아를‍ 최소한 1년은 먼저‍ 돌봐야 해요. 그런 뒤에 또 아이를‍ 낳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그래요. 안 그러고 빨리 한다면‍ 아기 5명, 6명, 15명을 한 번에 낳겠죠. 그것도 괜찮겠죠. 허나 아기들을 돌볼 시간과‍ 돌봐줄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해요. 그렇죠?‍

마찬가지로, 나 한 사람이‍ 동시에 모든 걸 할 순 없죠. 내면의 스승은 매우‍ 강력하고 무소부재하지만‍ 외면의 스승은‍ 물질적 차원에서‍ 온갖 장애가 있어요. 여러분도 잘 알고 있죠. 좋아요. 여러분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아요. 아이들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은 어디에나 있고‍ 그들은 어딜 가든‍ 여러분의 사랑을 느끼죠. 그래도 실재적인 존재로서‍ 여러분은 하나뿐이고‍ 그들은 여러분을 직접 보는‍ 걸 좋아하죠. 안 그래요?‍ 그러니 이럴 순 없어요. 『네가 어딜 가든‍ 난 너를 사랑한단다. 내가 너를 낳았잖니‍. 이제 네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가렴. 어찌됐든‍ 난 너를 사랑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유아들에게 늘 그렇게‍ 말을 할 순 없죠.

갓 입문한 입문자들도‍ 그와 같아요. 그들은 흥분되어 있고‍ 매우 감정적이고 기대도‍ 많고 요구도 많아서‍ 만족시키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그들을 오래된‍ 입문자들의 수준까지‍ 성장시키고 거기에‍ 남아 있게 하려면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해요. 그런 뒤에 다른 입문자들을‍ 『출산』하고 계속‍ 돌봐주는 거죠. 그러니 그렇게 가족이 계속‍ 늘고 멈추지 않을 거예요. 결코 멈추지 않을 겁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나면‍ 멈추겠지만요. 그래도 아마 한동안은‍ 계속될 거예요. 스승의 존재가 없어도‍ 이 『사업』은 아마‍ 한동안 지속될 거예요. 마치 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약간 굴러가듯이요. 그런 거예요.

사진 다운로드   

더보기
모든 에피소드  (4/11)
1
2024-06-26
4454 조회수
2
2024-06-27
3634 조회수
3
2024-07-06
2877 조회수
4
2024-07-07
2753 조회수
5
2024-07-08
2536 조회수
6
2024-07-09
2326 조회수
7
2024-07-10
2386 조회수
8
2024-07-11
2351 조회수
9
2024-07-12
2136 조회수
10
2024-07-13
2123 조회수
11
2024-07-14
2527 조회수
공유
공유하기
퍼가기
시작 시간
다운로드
모바일
모바일
아이폰
안드로이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GO
GO
Prompt
OK
QR코드를 스캔하세요 ,
또는 다운로드할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선택하세요
아이폰
안드로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