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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스승의 전수를 통해 참된 명상을 발견하라,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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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단계의 자기 최면은 다음과 같아요. 당신은 자신의 판단력과 지혜를 사용하여‍ 더 높은 존재 영역에‍ 대해 알게 되고‍ 점점 더 높은 삶과‍ 더 높은 사고, 그리고 더 높은 힘에‍ 익숙해지고‍ 매일 더 위대해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성취하고 싶다면 내면의 힘이‍ 여러분을 위해‍ 그것을 성취할 겁니다. 그때 우리는 신을 알고‍ 신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 몸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셨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때 우리와 신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가 말하죠. 불교 경전에서도‍ 인간의 삶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고;‍ 가톨릭에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그리고 무함마드의 경전, 즉 이슬람교 경전에서‍ 우리는 지구에 온‍ 손님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고향이‍ 여기가 아니란 뜻입니다. 단지 육체적 인간이 아니라‍ 더 큰 존재라는 뜻이죠.

다들 우리가 위대하다고‍ 말하는데, 우리의‍ 위대함은 어디 있나요? 인간 존재의 무엇이 그렇게 위대한가요? 우리는 기껏해야 인간의 이해를 통해서만 우리의 위대함은 알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회사에서 직위로 우리의 위대함을‍ 가늠하는 것과 같아요;‍ 또는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했는가에 따라 위대함을 재겠죠. 그것이 바로 인간의 관점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판단할 최대치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것은 영구적이지 않아요. 미안하지만 대통령도‍ 영원히 재임할 수 없어요, 한 나라에서 대통령은 최고의 지위이자, 최고의 명예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어요. 너무나 많은 백만장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사라졌어요, 우리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고대와 현재의 스승들이‍ 전수한 법문을 수행한다면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어요. 스승은 모두 동일한 하나의 법문을 가졌지요. 누구든지 진리를 설한다고 하는 사람은‍ 사실 같은 법문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우리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 또는 불성과 도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돕는 법문입니다.

종교에 따라 이름은 달라도 같은 힘을 나타냅니다. 그는 전능한 분이며 언제나 존재하고 영원하며‍ 완전한 사랑과 자비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이나 지고한 분, 전능하신 분, 도, 불성 또는 『如來』 – 여래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왜 다른 이름으로 부를까요? 전통이 다르고 표현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죠. 또한 언어 장벽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진짜 의미를‍ 현지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가령, 모든 사람이 부처님을 알며 그분만이‍ 부처님이라고 생각해요. 아닙니다, 부처는 깨달은 성자의 칭호일 뿐이죠. 그리스도라고 불러도 돼요. 그리스도가 히브리어로 깨달은 존재에 대한‍ 칭호인 것과 같아요. 이제 우리는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리스도 또는 부처라고‍ 부르며, 오직 그들만이 유명한 두 성자이며‍ 앞으로 올 세상과‍ 앞으로 존재할 세상에‍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하죠. 여기서 우리는 혼란스럽게 됩니다. 이제 현대에는 구루라는‍ 또 다른 용어가 있어요. 이제 모두가 구루가 돼요. 심지어 나도 구루죠. 나는 텔레비전에서 『칭하이 구루가 왔다』‍라는 말에 너무 놀랐어요. 나는 『세상에, 이제 내가 구루네』라고 말했죠.

미국인에겐 잘됐어요. 그들은 이제 구루라는‍ 칭호를 잘 알기 때문이죠.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칭하이 사부님이라 하면 구루의 중국어 호칭인데‍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뭐지? 「사부」?』‍ 이렇게 말할 거예요.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로‍ 『칭하이 부처』라고 하면‍ 『아니요, 부처님은 인도에 한 분 계셨고 2천 년 전에 돌아가셨죠』‍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부처가 됐다고 뽐낸다고‍ 생각하며 싸울 겁니다.

사실 부처가 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마치 수년 동안 공부해서 의사가‍ 되는 것과 같죠. 그러므로 여러 해 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워서 부처가 될 수 있으니, 부처를‍ 크게 여기고 우리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마세요. 그것은 불공평하고 자학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거죠. 부처님도 『우리는 모두 성불할 수 있고 불성이 있다』라고 하셨으니까요. 우리와 그분이‍ 동등하다는 뜻이에요. 유일한 차이점은 그분이 자신의 불성 -‍즉 내면의 보물을‍ 발견하셨으나- 우리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거죠. 아니면 이미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어요. 어제 나는 불성을 찾는 법을 여러분에게 공개했고‍ 여러분 중 일부는 그것을 조금 찾았죠. 그것이 부처가 되는 방법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과학적이며‍ 보통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신비함도 없고 법석을 떨 것도 없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부처가 되는 방법을‍ 거의 듣지 못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유일한 부처님은 석가모니,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라 믿도록‍ 속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믿게 되었어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지구의 유일한 그리스도로‍ 그분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른 그리스도가 없음을 믿게 되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 이전에 다른 선지자들이‍ 있었으며 사실 자신은‍ 고대 선지자의 환생이라고‍ 친히 선언하셨어요. 예수님에 관한 연구에서 이것에 대해 읽었어요. 그리고 부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죠. 그분 이전에 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많은 부처님이‍ 계셨어요, 아닌가요? 그렇게 말씀하셨죠? 불교도가 아닌가요? 부처님은 잊어 버려요. 우리는 자신의 부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는 단지 참고할 자료로 이것을‍ 언급하는 것뿐이에요. 불교나 어떤 『학설』을‍ 믿을 필요가 없어요.

당신은 자신의 타고난 천국을 믿어야 해요. 성경은 『천국은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나는 그것을 찾았고 여러분도 찾을 수 있어요, 코 푸는 것보다 내면의 천국을 찾는 것이 더 쉽죠. 코를 풀려면 먼저 휴지를 찾아야 하는데‍ 휴지가 없으면 어렵죠. 그러나 내면의 천국을 찾는 것은 몇 초, 몇 분이면 돼요.

나는 방금 우리가 부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많이 듣지 못한 이유와‍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이 그리스도나‍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했어요. 그것은 우리가 너무 무지하고, 너무 어리석고‍ 너무 작고, 무력하다고 믿도록‍ 길들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고 죄인이야 등등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완전히 아무것도 아니야 하면서‍ 우리는 세세대대로 세뇌당했죠;‍ 이런 잘못된 믿음을 우리에게 강요했어요.

성경에 『모든 존재는 신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말씀을 잊었어요. 그 말은 우리가 신이며, 똑같다는 뜻이죠.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하셨어요.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와‍ 아버지도 하나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모든 불행이 사라지겠죠. 이건 간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는 것은 말로 하거나 내가 말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훈련을 좀 해야 해요. 일종의 자기 최면이죠.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최면을 걸 수도 있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누군가에게‍ 최면을 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최면술은‍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황홀경에서 벗어날 때‍ 다시 평범한 비참함과‍ 어려움, 괴로움과 무지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더 나쁜 것은 최면술사의 영향 아래 자제력을‍ 일부 잃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죠.

가장 높은 단계의 자기 최면은 다음과 같아요. 당신은 자신의 판단력과 지혜를 사용하여‍ 더 높은 존재 영역에‍ 대해 알게 되고‍ 점점 더 높은 삶과‍ 더 높은 사고, 그리고 더 높은 힘에‍ 익숙해지고‍ 매일 더 위대해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성취하고 싶다면 내면의 힘이‍ 여러분을 위해‍ 그것을 성취할 겁니다. 그때 우리는 신을 알고‍ 신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 몸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셨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때 우리와 신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예수님의 상태와 같으니 그러면 우리는 더는 인간의‍ 외로움과 투쟁, 우리의‍ 작은 힘과 제한된 지혜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죠. 지금 과학자는 뇌의 제한된 부분만 사용해도‍ 많은 걸 성취할 수 있어요. 물론 실제로 작용하는‍ 뇌 시스템 전체를‍ 사용하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으며 이것을 믿기는 어렵지 않아요. 이는 사용 방법의 문제이고‍ 그걸 사용할 방법이 있어요.

고대 스승들은 교통과 통신의 문제로‍ 이동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대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스승의 가르침과 해탈의 길에 대해 무지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통신이 발달하고 교통이 편리하니 메시지를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거의 똑같고 또한 매우 비관적이며 자신을 의심하는 걸 알게 되었죠. 스승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을 의심합니다. 스승이나 스승의 말씀을‍ 의심할 때마다 자신을‍ 의심한다는 걸 알아두세요. 당신이 결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의심하는 겁니다.

자신이 너무 작고 무력한데‍ 어찌 그리스도처럼 위대해질 수 있나? 의심해요.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위임받은‍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의심하지요. 하나님이 별로 자비롭지 않아 시대마다 여러분을 본향으로 데려오기 위해‍ 또 다른 아들이나 딸을 보낸다는 걸 의심하죠. 이것이 인간 마음 속의 큰 의심입니다. 그들은 스승이나 가르침, 법문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환생 후 수천억 년 동안‍ 너무 실망하고, 너무 얕보이고‍ 너무 멸시받고, 세뇌되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자신은 죄 많은 존재일 뿐 결코 어떤 것이 될 수 없다는 거죠.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 내가 한 것을 너희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예수님은 『오직 나만이 이 모든 기적과 구원과 설교와 해방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너희도 똑같이 할것이다. 똑같이 할 수 있다. 더 잘할 수도 있다』 『너희는 더 잘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겁니다. 그렇죠? 멋지군요! 나는 예수님을 찬양해요. 그분을 사랑하고 숭배해요. 이것이 그분 가르침인데 우리는 모두 잊었어요. 우리는 교회와 신부들이‍ 말하는 것을 믿죠, 우리는‍ 죄인이며 예수님이 없다면 지옥에 갈 거라고 믿죠.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 영혼이 통곡할 거예요, 그분의 가르침이 이렇게 왜곡되고 고문을 당하기 때문이죠. 그는 정말로 울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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