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핼리팩스에 갔을 때 문제가 생겼어요. 폭설이 와서 비행기가 공항으로 돌아갔거든요. (와) 우린 많은 반려동물들과 다른 일들이 있었어요. 집에 있는 한 사람에게만 그걸 맡길 순 없었어요. (네) 또 신참이었고요. 그는 개들 먹이는 법이나 눈밭에 나가기 전에 따뜻한 옷을 입히는 방법도 잘 몰랐어요. 눈이 아주 높이 쌓였죠. 난 돌아가야 했어요. 핼리팩스에서 세인트존까지. 그런데 비행기 운항이 중단됐어요. 항공사측은 이랬어요. 『네, 여러분이 숙박할 호텔을 마련했으니 여기에 머물러주세요. 내일 날씨가 좋아지면 목적지까지 모시겠습니다』 탑승객은 다 머물렀죠. 나만 빼고요.
난 『가야 한다』고 했죠. 그래서 나갔어요. 환불은 안 해주더군요. 내가 가기로 한 거니까요. 그들 잘못이 아니죠. 나도 요구하지 않았어요. 『가야 한다』고 하자 그들이 말했죠. 『하지만 환불은 안 됩니다』 난 말했죠. 『네, 됐어요. 걱정 말고 가게 해줘요』 그러자 그들이 말했죠. 『하지만 이런 악천후에선 갈 수 없습니다. 갈 수 없으세요』
그전에 핼리팩스로 갔죠. 손가락이 동상에 걸린 어떤 남자가 있었거든요. (오) 장갑이 없어서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붕대로 다 감아야 했어요. 발도요. 그 소식을 듣고, 오, 난 가슴이 무너졌어요. 그래서 물품을 가져다줬죠. 원래는 우편으로 보낼 생각이었으나 그 사람 주소를 아무도 몰랐죠. (오) 아무도 몰랐어요. 노숙자였으니까요. (네, 스승님) 난 말했죠. 『그럼 핼리팩스로 가야겠어요. 분명 아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TV에 기사가 났거든요. 그러니 가서 물어보면 되죠. 그들은 뭔가를 알 테죠. 자선단체가 알든지요. 아는 사람이 분명 있겠죠. 비행기로 핼리팩스에 가서 택시를 타고 돌아왔어요.
그 택시 기사가 유일하게 우리를 태워주겠다고 했죠. 모두 그런 날씨에선 운행을 꺼렸거든요. (오) 바로 앞 도로도 잘 안 보였어요. 반려동물 때문이라니까 그녀는 가겠다고 했죠. 난 『요금을 두세 배로 주겠다』고도 했어요. 그녀는 돈 때문에 가겠다고 한 거예요. 난 말했죠. 『다행이네요. 정말 친절하시군요』 그녀의 택시를 타고 고작 5백 미터 정도, 몇 백 미터 정도 갔을 때 사고가 나서 우리는 눈더미에 처박히고 말았어요. (오, 저런요) 다행히 빠져나왔어요. 눈을 계속 파헤치면서 빠져나왔어요. 난 당시 내 시자였던 코스타리카인에게 말했죠. 『당신이 운전해요. 이 여인은 못 믿겠어요』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너무 피곤했나 봐요. 그 시간엔 차를 몰지 말고 쉬어야 했죠. 하지만 우리 때문에 우리가 안됐다고 태워준 거죠. 우리가 두둑하게 지불도 했고요. 하지만 시자가 운전을 해야 해서 나는 한눈을 팔 수 없었어요. (네, 스승님) 『좌회전, 우회전, 직진, 아니, 아니, 천천히, 지금은 좋아요. 가요, 가요, 가요. 천천히, 천천히』 밤새도록 그랬어요. 핼리팩스에서 세인트존까지 몇 시간이 걸렸나 몰라요. 게다가 밤이었어요. (네, 스승님) 밤이었죠. 그럼 택시 기사는 뭘 했을까요? 뒤에 앉아 있었어요. 난 앞에 앉았고요. (와) 지켜봐야 하니까요. (네) 시자가 졸지 않게 하고요. 얘기를 하면서 졸지 않게 해야 했어요. 노래도 하고 얘기도 했죠. 길도 알려줬고요. 도로엔 우리뿐이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죠. 차는 도로에서 미끄러지고 이쪽 저쪽으로 꺾였어요.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해요. 하지만 난 확신이 있었죠. 그전에 우린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그 노숙자가 있는 곳을 알아냈고 돈을 조금 주었어요. (놀랍습니다) 노숙자에게 당부했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요. 그게 당신에게 좋아요. 돈이, 현금이 있다고 말하지 말아요. 위험해지니까요』 수표로 줄 순 없잖아요? 그래서 돈을 줬어요. 현금으로 몇 천 달러와 옷, 장갑, 모자, 챙모자, 양말, 신발을 줬죠. (와) 부츠를요.
그는 노숙자였는데 누가 창고를 숙소로 내줬어요. 어느 교회 자선단체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우린 계속 수소문했죠.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계속 알아봤어요. 우리는 거기 도착한 뒤 어떤 이에게 교회 목사님 부부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어요. 부부가 나왔죠. 아주 겸손한 부부였죠. 자선활동을 하고 노숙자들을 돕고 있으니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아는 거죠. 부부는 우릴 그가 사는 창고로 데려갔어요. 거긴 방이 아니었어요. 그곳엔 그 부부가 준 망가진 소파가 있었는데 없는 것보다 나은 정도였죠. 주변에는 의자와 온갖 가구가 있더군요. 그가 가진 건 소파와 몇 미터 밖의 화장실이었죠. 그 뿐이었어요. 화장실까진 이리저리 돌아가야 했죠. (네, 스승님) 그리고 난방이나 조리에 사용할 난로가 있었고요. 그게 다였죠.
그런 데서 살았지만 적어도 춥진 않았죠. 근데 왜 동상에 걸렸을까요? 일자리를 찾으러 밖을 돌아다녔대요. 먹고 살려고요. 하지만 몸에 걸칠 게 없었던 거죠. 영하 40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오!) 영하 30도일 때도 있지만 영하 40도 아래로 떨어질 때도 있어요. 그랬던 걸로 기억해요. 영하 30도면 무난하죠. 하지만 기억하기론 영하 40도를 밑돌았어요.
나는 『그런 추위에서 산다는 걸 못 믿겠다』고 시자에게 말했어요. 내가 차에서 가게로 걸어갈 수 있을지도 자신 없었죠. 그런 추위에선 얼어 죽을 것 같았어요. 그전에는 영하 40도에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네) 쇼핑하러 간다거나 미용실도 못 가죠! 그래서 난 『그 사람은 정말 많이 고통스러울 거예요. 장갑이나 양말도 제대로 없으면요』라 했죠. 그래서 가야 했어요. 안 가면 내가 고통스럽죠. 정신적으로요. (네, 스승님) 그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할지 생각하면서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무 일도 안 하면 더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래서 갔어요. 그래서 그렇게 된 거죠.
다행히도 우린 제때에 돌아왔고 그 택시기사에겐 돈을 주고 호텔 방도 잡아 줬어요. 아침까지 쉴 수 있게요. 그런 뒤 운전하라고요. 난 말했죠. 『좀 자야 해요. 지금 돌아가면 안 돼요. 날씨가 좋아지고 안전해질 때까지 자고 그런 뒤에 운전하세요』 『알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호텔에 방을 잡고 돈을 지불한 뒤에 우리만 나왔어요. 작별했죠. 우리는 누가 와서 데려갔고요. 최소한 전화 연락처가 있었죠.
이 얘기는 이미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군요. 또 알고 싶은 건요?
(스승님, 정말 감동적입니다. 한 사람을 위해 먼 길을, 핼리팩스까지 가셨으니까요. 그런 위험한 날씨 속에서요) 네, 괜찮아요. (기사 내용과 같습니다. 매장 관리자의 말을 인용했죠) 네. (스승님이 카트 채우는 걸 지켜본 후 그는 말했죠. 『믿을 수 없었어요. 그런 경우는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5년간 일했지만요. 다른 거래처들도 이런 경우는 없었죠』 자선활동을 하는 거래처들도 스승님처럼 한 적이 없다고 했어요. 그러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자선 매장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말한 곳은 다른 매장이에요. 세인트존에 있는 그 교회는 구세군이 운영하는데 (네) 자선 가게를 해요. 내가 물품을 산 곳은 고급 의류 매장이었고요. (네, 네)
난 기부도 했어요. 원래는 옷만 주고 가려고 했는데 구세군의 소령이란 사람이 옆의 부지 얘기를 했어요. 그 땅을 사면 유용할 거라면서요. 노숙자 쉼터 등을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잊었어요. 그래서 땅을 구입할 돈을 줬어요. 뜻밖에도 꽤 쌌어요. (와) 아마 자선단체에서 땅을 산다고 하니까 더 저렴하게 판 것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또 다른 단체가 있었는데 거기에도 돈을 기부했어요. 더 많은 돈은 인출할 수 없었거든요. 그날 인출 가능한 액수 혹은 그 이상을 기부했죠. 인출가능 금액 이상을요. 나는 하루에 2만 캐나다달러 정도만 인출할 수 있었을 거예요. 많이는 필요 없어서 그 정도만 신청한 거죠.
신용카드가 있는 것만도 다행이었죠. 전엔 없었거든요. 미국에서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리고 내 돈은, 내 제자가 계좌에 갖고 있었는데 공동계좌로 만들려 하자 은행에서 이러더군요. 『그녀의 돈을 인출하려는 거죠? 그래서 공동계좌를 신청하시려는 것이죠』 그러면서 거절했어요. 그 제자와의 공동계좌 신청을 불허했죠. 내 돈인데요. 그녀가 얼마 전에 대만(포모사)에서 받아 둔 거였어요. 모든 제자가 돈이 있죠. 그들은 내 사업도 운영하고 이것저것 관리를 하죠. 전엔 내 소유는 거의 없었죠. 지금은 좀 있어요. 그래야 내가 누구 신세를 지려고 온 게 아니란 점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죠. 살아갈 능력이 있음을요. 간혹 체류를 위해, 거주권 때문에 그래야 하죠. 행정 당국의 서류 처리 때문에요. 안 그러면 돈을 볼 기회가 없어요. 당연하죠.
하지만 내게 부족한 건 없어요. 필요한 건 말하면 되는데 필요한 게 거의 없어요. 난 부탁하는 게 싫어요. 의존하는 건 내 천성에 안 맞아요. 내 신념에 맞지 않아요. 요청했는데 안 주면 난 더는 말하지 않아요. (네, 스승님) 저절로 되어지지 않으면 요구를 안 합니다. (네) 난 많이 필요 없어요. 여러분이 보는 옷들은 전부 아주 아름답지만 일하려고 입는 거예요. 유니폼처럼요. 특별 유니폼이죠. 다른 건 별로 필요 없어요. 난 저렴한 옷, 소박하고 편한 옷을 입으면 되죠. (네, 스승님) 그러니 많은 게 필요 없죠.
스승이 아니었을 때도 파리에서 일자리가 없어 사흘간 굶었어요. (오, 세상에) 일자리를 찾는 중이었죠. 돈이 없다고 말을 안 했죠. 일자리를 준 사람들에게도요. 감정상의 이유로 일을 그만둘 때도 거기서 돈을 원하는지 물었는데, 난 『아뇨,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라 했죠. (오) 그들이 오해하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요. 그때 난 인턴과 사랑에 빠졌거든요. (오) 이 얘기는 했을 거예요. (네, 스승님) 아내가 그를 막 대했어요. (오) 그는 의사였어요. 그 일로도 이미 바빴는데 집에 가면 아이들 일을 또 봐줘야 했죠. 아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요.
하지만 아내는 그에게 상냥하지 않았어요. 『이봐요, 이걸 해요! 저것도요!』라고 했어요. 명령조로요. 그래서 그를 동정하게 됐고 그 감정이 서서히 사랑으로 바뀌었는데 난 몰랐어요. 하지만 그걸 통제할 수 있었죠. 그가 깨기 전까진요. 그래서 달아나야 했죠. (네, 스승님) 그도 나에게 같은 감정이 있음을 알았고 그래서 머물 수 없었어요. 위험하니까요. 나 혼자라면 통제 가능하지만 난 젊었거든요. 그래서 가야 한다고 했죠. 바로 그만뒀어요. 난 머물 곳도 없고 돈도 한푼 없었죠. (오) 학생이라서요. 버스 요금으로 쓸 몇 달러뿐이었고 빵을 살 돈은 없었어요. 빵을 사면 일자리를 찾으러 다닐 교통비가 모자라죠. 그래서 사흘간 못 먹었죠.
일자리를 찾으려고 공원을 걷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와서 8백 프랑을 준다고 했죠. 당시 액수로요. 미국 달러론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반 정도 될 거예요. (와) 자기와 가자면서요. 난 말했죠. 『안 가면 경찰을 부르겠어요』 (와) 심각한 얼굴을 했더니 갔죠. 적어도 예의는 있었죠. (네, 스승님) 예의는 있었어요. 난 어렸을 때도 그랬어요. 어울락(베트남)에 있을 때 어떤 곳에 갔는데 돈이 많지 않았어요. 학생이었으니까요. 친구의 친구가 자기 집에 머물게 해줬어요. 그들은 음식을 해주고 놔두고 갔어요. 날 위해 준비한 건지 알 수 없었죠. 내가 방에서 나오기 전에 해뒀거든요. 그래서 감히 먹지 못하고 나가서 빵을 먹고 물을 마셨어요. (오, 세상에) 날 위해 뭘 부탁하는 게 무척… 마음이 편치 않아요. (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