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명상을 잘하면 약간 아프더라도 나을 수 있겠죠. 하지만 너무 심하면 아마 『안녕히 계세요』 하며 가게 될 겁니다. 낮은 등급인 상태로요. 높은 등급으로 해탈하는 게 아니고요. (네) 스승에게 입문했으니 보호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도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네, 스승님)
난 전처럼 혼자 있어서 (내면 천국의) 소리 명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러면 빨리 회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네, 스승님)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정말 진심으로 바랐지만, 할 수 없었죠.
손에는 온갖 튜브들이 꽂혀 있었어요. (와. 네, 그랬군요) 그리고 내 침대에는 난간까지 처져 있었어요. 내가 떨어질까 걱정을 했으니까요. 예를 들면 그랬어요. (오, 세상에) 혼자 일어나지도 못했죠. (아) 침대를 45도 각도로 세워줘야 했어요. (네) 안 그러면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할 때마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죠. (아) 고통스럽지만 말 한마디 못하고 비명소리도 못 냈죠. (오, 저런) 전신이 마비된 것처럼 그저 꼼짝 못하고 앉아 있는 거예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죠.
가끔 간호사가 말을 걸어도 난 대답을 할 수 없었죠. 그들은 나한테 화를 냈어요. 그 당시엔 내가 말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나중에 사과를 했지만 그들은 내 말을 안 믿었고 침대를 쳐서 내가 더 고통스럽게 했어요. (오, 저런) 네, 침대에 나를 천천히 눕히지 않고 황급히 내려놓는 바람에 내 몸이 침대 프레임에 부딪히곤 했어요. (네, 스승님) 물론 침대에서 그랬지만 아주 세게 부딪혔죠. 그래도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죠. 나중에 내가 사과하고 설명을 하자 그들이 와서 내게 사과했어요.
한 간호사는 심술궂었죠. 오해를 한 것 같았어요. 그녀는 병원에서 힘든 때가 있었죠. (네) 간호사로 일하는 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죠. 사람들이 늘 고마워하는 건 아니에요. 간혹 소리도 지르고 고마워하지 않죠. 몸이 아프니까요. (네)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죠. 난 사과했지만,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죠. 나중에 그 의사한테 수술을 받고 그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 안 했죠. 그때서야 그녀는 내가 정말 아팠다는 걸 알았죠. 그들이 설명을 해줘서요. 안 그랬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이해 못 했겠죠. 그녀는 내가 관심을 끌려고 아픈 척하거나 고집을 부린다고 여겼어요. (네, 스승님)
그런 다음 얼마 후에도 내 옆에 있던 환자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요. 나는 이미 수술을 받고 돌아와서 회복을 하던 중이었죠. 그래서 난 그녀에게 뭔가를 주면서 말했죠. 『당신에게 축복이 될 거예요. 당신도 나처럼 곧 회복될 거예요, 갖고 있으세요』 그때 간호사들이 그걸 봤죠. 다른 간호사가 나한테 그 선물을 줬으니까요. 그녀는 말했죠. 『이건 당신에게 아주 좋은 거예요』 좋은 간호사죠. (네)
그때 나쁜 간호사가 봤고 그녀는 내 침대 옆에 와서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했어요. (와) 그녀는 『당신은 나의 스승이세요. 그토록 몸이 아프시고 심한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여전히 다른 이들을 생각해 주시는데 전 당신을 나쁘게 대했어요』라고 하면서 『죄송하다』고 했어요. 난 말했죠. 『아뇨, 내가 설명을 못해서 당신이 오해한 거라 생각해요. 난 너무 아팠어요. 너무 쓸모없고 여러분 모두에게 짐이 된 것 같았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어요』
끔찍한 통증이었어요. 그런데도 의사는 그동안 그게 뭔지 알아내지 못했죠. (네, 스승님) 몇몇은 심지어 내가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했고 나를 안 좋게 대했어요. 심지어 의사들조차요. (와)
그러다 나중에 입문자 중 한 명인 의사 형제가 와서 추측을 했어요. 그는 그런 유형의 병에 경험이 좀 있었어요. 그는 고향의 다른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 추천을 해주며 그 의사들에게 말했어요. 『그녀를 그 분야의 병원으로 보내서 진단을 받게 해주세요』 (네, 스승님) 그래서 그들은 나를 그다음 병원으로 보냈고 거기서 나는 즉시 수술을 받았어요. (와) 내 말은 다음날 아침 바로요. 저녁때쯤 거기 도착했는데 그들은 다음날 아침에 수술 준비를 했어요. (와) 기다릴 수 없었던 거예요. 안 그러면 난 마비됐을 거라고 말했어요. (와) 그건 사실이었죠. 나중에는 그들도 전부 그걸 알았죠.
아무튼 사연이 길어요. 난 고통뿐 아니라 이 모든 부당한 취급도 받아야 했죠. 세상의 업장 때문이었죠. 또 명상도 충분히 못했고요. (네, 스승님) 왜냐하면 난 너무 많은 것들을 돌봤고 너무 많은 제자들이 와서 내 관심을 원했으니까요. 특히 당시 유럽에서요. (네, 스승님)
이 모든 걸 말해주고 싶었죠. 그래야 여러분이 알고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죠. (네, 스승님) 여러분은 두 시간 반 명상을 해야 하는 보통 제자들과 달라요. 최소한 4시간을 해야만 해요. (네, 스승님) 꼬박 4시간을요. 안 그럼 문제가 생기거나 떠나게 되거나 여러분이 나가야 할 어떤 일이 생기거나 병에 걸릴 겁니다. (네)
여전히 명상을 잘하면 약간 아프더라도 나을 수 있겠죠. 하지만 너무 심하면 아마 『안녕히 계세요』 하며 가게 될 겁니다. 낮은 등급인 상태로요. 높은 등급으로 해탈하는 게 아니고요. (네) 스승에게 입문했으니 보호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도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네, 스승님)
가령 외부 사람들, 노숙인들이 굶주리면 우린 그들에게 음식을 주고 쉼터도 제공하지만, 그들이 이용해야 하는 것과 같죠. (맞습니다, 스승님. 네) 음식이 풍부하고 무료라도 먹어야 하는 거죠. (네, 스승님)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지,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선 안 되는 거죠. 마약, 담배, 음주 같은 걸 하는 걸로요. (네, 스승님) 혹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고 집 안에 들어가서 자지 않거나 해요. (네) 이건 단지 예일뿐이에요. 좀 더 실제적인 예를 통해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길 바라는 거죠. (알겠습니다)
오래전에 난 다른 나라를 많이 여행하곤 했어요. 때로는 비행기 안에 매우 두껍고 어둡고 무거운 업장이 있었죠. 난 기분이 너무 안 좋았고 안절부절못했어요. (네) 창문을 부수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였어요. (와) 하지만 전부 삭여야 했죠. 난 관음 명상을 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 (내면 천국의) 소리 명상을 하면 즉시 평화로워지고 평온해지니까요. (네, 스승님)
그래서 때론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문을 잠가야 했죠. 기내의 지저분한 공중 화장실에서 명상을 좀 하면서 나 자신을 진정시켜야 했어요. (네) 물론 그들은 문을 두드렸어요. 날 그냥 내버려 두지 않죠. 거기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되니까요. (맞습니다. 네) 사람들은 거기서 담배를 피우거나 마약을 하는 줄 알 거예요. (네) 그들이 의심할 만하죠. (맞습니다. 네, 스승님) 은밀하게 뭔가를 할 수 있는 장소니까요. (맞습니다, 스승님. 네)
그래서 난 어떻게든 객실 뒤쪽 한구석으로 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고 소리 명상을 했어요. 하지만 아주 짧았죠. 왜냐면 승무원이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의심스럽게 쳐다봤으니까요. 여러분을 건드리면서 (네) 『괜찮으세요?』 하죠. (네) 그렇게 전신을 다 가리고 앉아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계속 경계를 해야 했어요. (네, 스승님) 항상 몇 분이나 1, 2분씩 끊어서 해야 했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나았죠. (맞습니다. 네) 안 그랬으면 비행기 안에서 미쳐버렸을 거예요. (이해합니다, 스승님)
때론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싶지도 않았어요. 비행 공포증처럼요. (네) 난 비행 공포증이 전혀 없었는데 많은 제자가 생긴 후부터 달라졌죠. 난 십 대나 젊었을 때부터 이미 비행기를 탔어요. 멀리 유학을 갔으니까요. (네) 그리고 부모님과 여동생과 친척들을 보러 갈 때도 비행기를 탔죠. 늘 어울락(베트남)에서 비행기를 탔어요. (네) 특히 전쟁 중에는 그게 더 안전했어요. (네) 부모님은 내가 버스 대신 비행기를 타게 하셨죠. 왜냐하면 거리에는 지뢰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늘 그런 일이 일어났죠. (네, 스승님) 그 당시 적군이었던 북부군이 지뢰들을 묻어 놨었죠. (네)
길에다 지뢰를 묻었어요. (아) 그래서 버스가 그 위를 지나면 『쾅』하고 터졌고 모두가 죽었어요. (저런) 종종 그랬어요. (네) 민간인을 해치려던 건 아니고 남부군 때문에 설치한 것이겠죠. 하지만 어떻게 피하겠어요? 민간인도 도로를 이용하잖아요. (맞습니다, 스승님) 어떻게 피해 가나요? (네) 정말 문제가 많아요. 전쟁은 정말 나쁩니다. 아주 끔찍하죠.
나의 선생님도 총에 맞아서 돌아가셨어요. (아) 왜냐하면 마을이나 지방, 도시마다 마을이나 도시의 입구를 지키는 민간단체를 조직했거든요. (네, 스승님) 그래서 당시 북부군은 그들을 적으로 간주해서 그들도 쐈어요. (네. 그랬군요) 그들은 단지 민간인이었고 강요에 의해서 그렇게 한 것뿐이었는데도요. 만일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나 공산주의 동조자, 간첩으로 낙인이 찍혀서 어쨌든 감옥에 갇혔을 겁니다. 때리고 고문하면서 자백을 강요했겠죠.
내 아버지도 그런 일을 겪으셨죠. (아) 이유 없이 감옥에 가셨죠. 난 알아요. 전쟁 중엔 그 누구도 무사할 수 없어요. 언제든 억울하게 고발당해 감옥에 갇혀 얻어맞거나 고문을 당할 수 있어요. 약간의 의혹만으로도, 혹은 여러분을 싫어해서 고소하는 사람들 때문에요. (네, 스승님) 우스운 일이죠.
전쟁 중에 남측 정부는 아버지를 공산주의자로 의심해 감옥에 가뒀죠. (오) 이미 그 얘기는 해줬죠. 어머니가 아프실 때까지요. 그래서 내가 찾아가야 했죠. 난 고작 7, 8살이었어요. 어머니를 구하려고 혼자 교도소에 가서 아버지를 내보내 달라고 빌었죠. 그 지역에는 좋은 병원이 없었고 어머니는 거동을 할 수 없었으니까요. 내 여동생을 낳은 후에 많이 아프셨어요. (네) 그 얘기는 이미 해줬으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아요. (네, 스승님)
아버지는 공산주의에 동조했다고 고발되어 전쟁 중에 투옥되셨어요. 당시에 그건 반역행위와 같은 거였어요. (네) 반역자요, 그 외에 또 뭐라고 하죠? 아무튼 조국을 배반했다는 거죠.
물론 양쪽이 싸우고 있는데 여러분이 적과 함께한다면 반역자가 되는 거죠. (네) 반역죄라고 부르기도 하죠. 반역죄를 저지른 거죠. (네) 그래서 아버지는 반역자, 공산주의 지지자, 공산주의 첩자, 비밀 첩자로 몰려 수감되셨어요.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이 남부를 점령한 후에는 가난한 노동자가 아니란 이유로 다시 수감되셨죠. (아) 그들은 부자들과 지주들을 가려냈어요. 우리 가족도 땅을 소유하고 있었죠. (네, 스승님) 논 같은 땅이 있으면 농부들이 와서 농사를 짓게 하고 수확을 나누죠. (네, 스승님) 그래서 우리 부모님도 감옥에 가게 됐고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죠. (오) 교육 캠프라고 불렸어요. (아. 네, 스승님)
그러니 적과 함께 있든 아니든 힘들었죠. 적이 나라를 점령한 후엔 적 역시도 감옥에 가뒀죠. (아) 맙소사. 뭔 세상이 그런가요. (네, 스승님)
아버지는 적도 아니고 원수도 아니셨어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죠. 그저 아픈 사람들을 돌봐주셨을 뿐이죠. (네) 그냥 의료인이셨어요. 아픈 동물 주민들도 돌봐주셨어요. 그랬을 뿐이죠. (오) 그뿐이었어요. 어머니는 장사를 하셨고요. 상인이셨어요. (네) 옷 만드는 옷감을 파셨죠. (네) 그게 다였어요. 두 분 다 그저 가족을 입히고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셨던 거예요.
한데 누가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죠. (네) 사실이 판명되어 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이미 만신창이가 되죠. (오)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별개의 문제죠. (네) 왜냐하면 때로는 아버지를 아는 누군가를 붙잡았을 수 있으니까요. 모두가 그를 알고 있었죠. 작은 지역에서는 서로 다들 알죠. (맞습니다. 네, 스승님) 그가 심하게 맞고 고문을 당했기 때문에 그냥 아무 이름이나 댔던 거예요. (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이 명단에 있었어요. (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를 잡아 가뒀어요. (와) 그리고 나중에 공산당이 이미 남부를 점령하고 하나의 나라가 된 후에도 아버지는 또 노동 수용소에 수감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