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송에서 말하길: 오늘날 중국에 한 성인이 있는데 지위나 권력이 없어도 그녀는 하는 모든 일에서 성공한다』
오늘도 예언서 추배도의 44번 육효를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추배도는 저명한 천문학자 겸 역사가 중국의 이순풍과 원천강이 저술했습니다.
『송가에 이르기를 오늘날 중국에 성인이 계신다네』 이 예언이 지금 우리 시대를 말한다면 『오늘날 중국에 있는』 이 성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비록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대륙에 거주해오셨지만, 칭하이 무상사님은 중국인 사이에 가장 오래 자리를 잡으셨으며 중화민국으로도 부르는 대만에서 다년간 거주해오셨습니다. 나아가 『중국』의 한자어는 말 그대로 『중앙의 나라』 혹은 『모든 나라의 중심』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은 이 성인이 전 세계의 한복판에 계신다는 걸 뜻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세계의 시민입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여러 대륙을 여행하며 가시는 곳마다 그 나라의 의식을 높이셨습니다.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진 우리 협회원들과의 유쾌한 모임에서 스승님은 말 그대로 중심이 됩니다. 스승님의 방송 수프림 마스터 TV는 장벽을 넘어 전 세계 사람들 사이에 우정과 형제애를 조성하려는 노력의 중심에 있습니다.
『권력도 없고 지위도 없으시나 이분이 하시는 모든 일이 성공한다네』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정치적 권력이나 세속의 지위가 있는 사회 일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영역과 영적 영역 모두에서 노력을 기울이신 모든 일에 큰 성공을 이루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스승님은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이루셨습니다. 다음은 스승님의 여동생이 공유해 주신 하나의 사례입니다. 『아버지는 감옥에 계셨고 엄마가 절 낳으셨는데 무척 힘든 시기였어요. 엄마가 병에 걸리셨는데 아무도 치료를 못 했어요. 스승님은 아버지가 엄마를 치료할 수 있음을 알았죠. 9살이면 아주 어리지요. 아주 먼 거리였고 전쟁 중이었어요. 스승님이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마침내 아버지가 갇힌 곳에 도착하셨어요. 감옥에 가서 교도소장을 만나길 청하셨죠. 스승님이 교도소장 앞에서 많이 울고 오후내 기다리자 사랑스럽고 정이 많은 작은 소녀가 안타까웠던 교도소장은 고심 끝에 아버지를 집에 보내 어머닐 치료하게 해줬죠. 교도소장이 떠나기 전에 말했어요. 「내가 왜 당신을 집에 보내주는지 알아요? 당신 딸에게 감동했기 때문이오. 당신 딸의 상냥하고 다정한 말에 감동했소. 그래서 아내를 치료하게 집에 보내주는 거요」』 이 사건 이후 며칠 안에 스승님의 아버지는 혐의를 벗고 완전히 풀려나서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14세에 스승님의 아버지가 심각한 병을 앓고서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하셔야 했을 때 스승님은 간호사들에게 예외적으로 아버지 곁에 머물며 간호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대신 간호사들을 돕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승님은 아버지의 목숨만 구한 것이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아주 전문적으로 보살펴서 간호사들이 아주 놀라고 기뻤다고 합니다! 또한 스승님은 아직 어렸을 이 무렵 주요 시 짓기 대회에 우승하며 당시 어울락(베트남) 총리로부터 직접 상을 받았습니다. 학창 시절 동안 스승님은 공부에 시간을 별로 할애하지 않았지만 늘 학급에서 선두를 지키셨습니다.
성인이 된 후 스승님은 혼자서 아무런 장비도 없이 인도의 히말라야로 위험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러나 위험이 닥칠 때마다 - 생명을 위협하는 더위나 추위, 가파른 산의 절벽이나 급히 차오르는 강물 등- 스승님은 언제나 기적적으로 보호받고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난 장비가 없었어요. 내가 가는 곳곳마다 곰과 뱀, 방울뱀, 전갈 등이 함께 있었지요. 옷도 두 벌뿐이었어요. 이것보다 얇은 거였어요. 히말라야를 뛰어다녔는데 감기에 걸린 적이 없었어요. 옷도 항상 젖어 있었어요. 마를 날이 없었고 장작 살 돈도 없었어요』 『많은 사람이 길에서 죽었죠. 산사태나 눈보라 때문에, 길이 무너지거나 해서요. 한번은 버스를 타고 산길을 가는데 산사태가 나서 우리 버스를 덮쳤습니다. 모두가 너무 놀라서 버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는데 난 말했어요. 「지금 나가면 죽을 거예요. 앉아서 만트라를 외우세요. 여러분의 스승에게 기도하세요」 그래서 다들 그렇게 하자 갑자기 산사태가 멈췄어요. 원래는 무너져 내릴 건데 그게 딱 멈췄습니다. 그래서 다들 나한테 와서 고마워했지요』
영적인 스승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어울락(베트남) 난민을 돕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셨습니다. 그들은 당시 강제 송환으로 극한의 고통과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각 정부에 서신을 보내고 언론과 얘기하시며 스승님은 여러 국가 원수와 고위 관료들을 만나 전 세계에 난민이 처한 곤경을 알리셨습니다. 마침내 스승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5천 명 이상의 난민이 필리핀에서 영주권을 얻어 안전을 보장받았습니다.
1990년대 초 많은 정부 관리와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마르코스 여사와 각종 매체는 이 인도적인 대의를 돕기 위해 칭하이 무상사의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칭하이 스승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소개받을 수 있었는데 아주 효율적인 분이었죠. 저는 라모스 대통령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대통령께 스승님의 업적과 그녀가 난민들을 위해 어떻게 일했는지를 알리면서 대통령께서도 뭔가를 하셔야 한다고 말했죠』 『필리핀은 어울락(베트남) 난민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피난처로 보였지요. 외국에서 새 거주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필리핀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시행한 가장 보람된 정책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칭하이 무상사께서 마누엘 모라토 씨와 마닐라 사회 곳곳을 누비셨을 때 자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자비로운 사람들은 베트남(어울락) 형제들에게 정치적인 피난처를 제공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법안은 통과되었고 라모스 대통령은 줄곧 도움을 주었어요. 덕분에 우리는 마닐라에 머물기를 원하는 많은 형제에게 자유의 안식처를 제공할 수 있었어요』 『이 신사분들께 감사합니다. 어려울 때 동료 인류를 도와준 조건 없는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창작의 영역에서 스승님은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다재다능한 예술가로서 약간의 시간과 도구, 노력으로 여러 명작을 탄생시키십니다. 스승님의 작품인 그림, 보석, 의상 디자인과 인테리어, 조경 설계, 만세등, 시, 노래 등은 대중과 전문가들을 모두 매료했습니다.
『믿어지지 않아요! 와! 놀라워요! 좋아 보이네요! 오, 아름다워요!』 『저는 이분의 모든 작품을 좋아해요. 그녀는 예술 분야에 학위가 없는데도 천국에서 온 재능과 감성들을 세상과 나누고 우리 마음과 영혼을 일깨워줍니다』 『아주 때 묻지 않은 아이 같은 표현과 필치에 저는 감동받았습니다. 정말 천상의 예술 같은...』 『무상사님의 시는 노래를 합니다. 대부분의 가사보다 훨씬 깊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보물을 글로 남겨 세상과 나눠주시고 우리가 당신의 시로 작곡할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등...
스승님의 가장 뛰어난 걸작 중 하나는 천국 같은 시후 아쉬람입니다. 건설 경험이 없는 스승님과 소수의 거주 제자들이 초기에 물도 전기도 없는 불모지에서 완성한 장소입니다. 스승님이 탄생시킨 이 작은 낙원에는 편의 시설과 흐르는 시냇물, 쾌적한 정원과 안락한 동굴 및 대형 구조물 등이 있지요.
다음 편에 계속해서 우리 세상을 고양하기 위한 칭하이 무상사의 사명이 성공한 무수한 사례들을 계속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