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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에바 페론(에비타): 한 나라의 사랑받는 지도자,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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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에 에바 두아르테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당시 아르헨티나 노동부 장관인 후안 도밍고 페론 대령의 업적을 강조하였습니다. 1946년 2월, 후안 도밍고 페론은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불우이웃에게 더 많은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열망이 컸던 자애로운 영부인은 에바 페론 재단을 만들었고 개인 기부로 출범했습니다. 재단의 자산은 영부인이 엄청난 속도로 분배한 자산과 더불어 거금이 모였습니다. 재단은 1만 4천 명을 고용하였는데, 그중 6천 명은 건설 노동자였고 26명은 사제였는데 그 이유는 에바 페론이 아주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태 가톨릭 신자로 세례받은 에바는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필요한 모든 이와 나누었습니다.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 여성 투표권을 위해서도 싸웠습니다. 지속적인 캠페인에 이어 1947년, 하원은 만장일치로 법을 승인하였습니다. 에바의 33번째 생일날, 아르헨티나 의회는 『국가의 정신적 지도자』 칭호를 그녀에게 전했죠.

1952년 7월 26일, 에바 페론은 작고했습니다. 에바의 장례는 보통 국가 원수에게 주어지는 명예인 국가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그날로부터 70년이 흘렀지만, 국가의 정신적 지도자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며 에바의 목소리와 사랑은 영원히 남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도록 계속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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