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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힘사는 비폭력의 방식: 모든 인간은 형제자매다 - 마하트마 간디(채식인),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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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아힘사, 비폭력의 길

『사티아그라하(비폭력 저항운동)를 하면서, 진리를 추구한다고 해서 상대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으며, 인내와 동정심으로 잘못을 피해야 함을 저는 초기에 발견했습니다.‍ 한 사람에겐 진실로 보이는 게 다른 이에겐 잘못으로 보일 수 있죠. 인내는 자기 고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신념은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고통을 가해 진실을 입증함을 의미합니다.‍ 이 경이의 시대에 어떤 사물이나 관념이 새롭다고 무가치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어렵다고 해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매일 일어나며, 불가능한 일이 점점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폭력 분야의 엄청난 발견으로 오늘날 끊임없이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폭력 분야에서 훨씬 더 꿈도 꾸지 못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발견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나는 주장합니다.‍ 사람과 그의 행위는 별개의 일입니다. 어떤 체계에 저항하고 공격하는 건 당연해도, 그 창시자를 공격하고 저항함은 자신에게 그런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붓으로 칠해졌고 똑같은 창조주의 자녀인 만큼, 우리 내면의 신성한 힘은 무한합니다. 한 사람을 무시하면 그 신성한 능력을 무시한 것이며, 그 존재와 전 세계에 해를 끼치는 겁니다.‍ 비폭력은 보편적 원칙으로, 그 작용이 적대적 환경에만 발휘되지는 않습니다.

그 효과는 반대 속에서,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동할 때 시험받지요. 우리의 비폭력이 권력기관의 선의에 의존한다면 공허하고 무가치할 것입니다. 이 힘을 성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육체와 별개인 영혼의 존재와 그 영원한 본성을 인식하는 겁니다. 이 인식은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이어야 하죠.‍ 어떤 친구는 정치와 세상사에서 진리와 비폭력은 설 자리가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는 개인의 구원수단으로 그것을 사용하지 않지요. 일상생활에서 그걸 도입해 적용하는 실험을 줄곧 했습니다. 누구도 적극적으로 비폭력일 수 없고, 어디서나 사회적 불의를 보고 일어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동적 저항은 개인이 고통에 안전하게 대항하는 방법이며, 무기로 저항하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양심에 반하는 일을 거부할 때 나는 영혼의 힘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당시 정부는 내게 적용되는 법률을 통과시켰는데 나는 그 법이 싫었어요. 폭력을 사용해 정부에 그 법의 폐지를 요구하면 나는 육신의 힘이란 것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법을 지키지 않고 위반에 대한 처벌을 받아들이면 영혼의 힘을 사용하며, 자기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희생이 남을 희생시키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합니다. 더욱이 이런 힘을 부당한 일에 쓰면 그 힘을 쓰는 사람만 고통을 받습니다. 그는 자기 실수로 남이 고통받게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인간은 결과적으로 잘못으로 밝혀진 많은 일을 했습니다. 누구도 자기 생각으로 반드시 무엇이 옳거나 틀렸다고 주장할 순 없지만, 그가 고의로 그렇게 판단했다면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잘못임을 아는 일을 하면 안 되고, 그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여야 함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열쇠입니다.‍

아힘사 숭배자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공리적 원칙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에 최고선을 위해 노력하고 이상을 이루기 위해 죽을 겁니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기꺼이 죽을 겁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이 죽을 것입니다. 만인을 위한 최고선은 필연적으로 최대 다수의 행복을 포함하며, 따라서 그 사람과 공리주의자는 활동의 많은 부분이 겹치지만 언젠가 거리를 두고, 심지어 대립해서 일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논리적 공리주의자는 결코 자신을 희생하지 않죠.

절대론자는 자신조차 희생할 것입니다. 물론 비폭력 혁명은 있을 수 없으며, 역사상 알려진 바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례를 만드는 것이 나의 야망이고, 내 꿈은 조국이 비폭력을 통해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비폭력을 희생해서 조국의 자유를 사지 않겠다고 국제 사회에 무수히 반복해 말할 것입니다.‍ 비폭력과 나의 결합은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내 입장을 버릴 바에야 차라리 살지 않겠습니다. 비폭력이 아니고는 진리를 표현할 수 없기에, 나는 이와 관련해 진리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30년간 축적된 경험에서, 처음 8년은 남아프리카에서 비폭력을 택하는 것에 인도와 세계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가장 큰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지요.‍ 그것은 인류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짓밟은 과오를 다루는 가장 무해하면서도 똑같이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비폭력이 평화와 최후의 구원을 위해 개인이 닦아야 할 은자의 덕목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오래 전부터 갈망한 평화를 향해 나아가며 살기 위한 사회를 위한 행동 규범인 것을 알았습니다.‍ 비폭력은 남녀노소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힘으로, 신의 사랑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을 주고 모든 인류를 똑같이 사랑하게 합니다. 삶의 원칙으로 비폭력을 받아들이면 그것이 온 존재에 충만해지며, 개별 행동에만 적용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비폭력이 된다면 이 땅에서 가장 비열하거나 가장 천한 인간이 가질 어떤 것도 바라서는 안 됩니다. 비폭력 원칙은 반드시 어떤 형태의 착취도 완전히 금해야 합니다.‍ 전쟁에 대한 나의 저항은 전쟁에 참여하려는 사람을 막을 정도는 아닙니다. 나는 논리적으로 더 나은 길을 제시하여 그들에게 선택하게 합니다.‍ 나를 비난하는 자에게 인도 국민뿐 아니라 전쟁에 가담했든 아니든 전 세계의 고통에 나와 함께 참여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 살육을 무관심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나는 서로 죽이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맞지 않는다는 불변의 신념이 있습니다. 그 탈출구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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