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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호리 스코보로다(채식인): 신의 힘은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는 신과 함께 평화롭다,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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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힘이 함께 있고 우리는 신과 함께 평화롭다.

구덩이나 깊은 물에 빠진 사람은 그 어려움이 아니라 자신을 구할 생각을 합니다. 당신이 집을 짓는다면 몸과 영혼 모두를 위한 집을 지으세요. 몸을 치장하고 꾸미더라도 마음을 잊지 마세요. 두 종류의 빵과 집과 옷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두 종류입니다. 만물은 둘이 되며, 각자에게 두 아버지, 천국과 지상의 두 아버지가 있으며, 원래와 덧없는 두 세상이 있으며, 신성과 육신의 두 본성이 있습니다. 만물이 그러합니다. 그것들을 서로 섞고 눈에 보이는 성질만 인정하게 되면 자기가 만든 우상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이 바로 이것을 막습니다. 성경은 모든 소멸성을 넘는 아치문이자 우리 마음을 신의 참된 개념을 가진 신앙과 신성에 대한 희망, 평화와 사랑의 왕국, 최초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문이 됩니다. 이것이 오래가는 평화죠. 통치하는 본성을 믿고 인정하며, 그것을 무적의 도시처럼 의지하고 『나의 하나님 주님이 살아계십니다』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내 영혼은 살아 있다』고 말할 겁니다. 이것 없이 어떻게 소멸하는 본성에 의존할 수 있을까요? 모든 소멸하는 것이 매 순간 나타났다 사라짐을 보고 어떻게 전율을 피할 수 있을까요? 존재의 소멸하는 실상을 보면서 누가 화내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은 평화를 기다리지 말고 이사야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평온함을 얻지 못한다.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화가 없다 하셨느니라』

누가 평화의 산에 오르는지 보세요. 『주님은 나의 힘이시니, 내 발걸음을 완성해 주시고, 높은 곳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그분 노래로 나를 승리하게 하실 것이니라』 그는 주님을 알며, 주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노래하며, 하나님은 그를 평화의 산으로 인도합니다. 주님을 부인하는 것은 가장 괴로운 고통이며 심장의 죽음입니다. 입술의 활동은 심장의 병이며, 심장의 병은 악인의 머리에 꽂히는 죽음입니다. 그 침으로 영혼을 죽이는 이 자연적인 죽음은 소멸할 수 있는 것과 신성한 본성의 혼돈입니다. 이 혼란스러운 섞임은 『너희의 양식은 티끌이 되리라』라는 말씀처럼 신성한 본성이 티끌과 재의 방향으로 벗어난 것입니다. 『누가 타락을 알 수 있는가?』라는 말씀처럼 벗어남이 타락입니다.

집회서에서 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것의 이빨은 사자의 이빨이며 인간의 영혼을 죽인다』 이것은 어둠입니다! 이것은 방황하게 합니다! 이건 불행입니다! 육신의 본성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본성의 혼란이 어디에서 오는지 보세요. 이것은 원시적인 우상숭배의 광란이며, 신성에서 이탈이며, 신에 대한 무지입니다. 이런 잘 알려진 마음의 슬픔은 몸에 좋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축복받은 본성을 향해 눈을 약간 뜨면 우리는 즉시 『그것은 어렵다, 어렵다!』라고 외칩니다. 이것이 달콤한 쓴맛입니다. 하지만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본성을 밝히고 분류하며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우리에게 소중한 이스라엘이 되어 만물을 둘로 나누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보이지 않는 절반을 주님께 바치는 것이 아닐까요? 바울이 복된 사람에게 이것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 기준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 복된 본성의 왕국은 비록 숨겨져 있더라도 외부의 표식 뒤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화 속의 가장 진실한 묘사처럼 공허한 물질에 발자국을 찍습니다. 모든 물질은 칠해진 진흙, 진흙투성이 물감, 아름다운 가루일 뿐입니다. 그러나 복된 본성은 그 자체가 시작이거나 원칙이며, 시작 없는 창조력 또는 발명품이며, 모든 가시적인 색을 지탱하는 가장 현명한 묘사입니다. 이것들은 그들의 불멸의 힘에 맞고, 옷처럼 본질적으로 몸에 맞습니다.

다윗은 사물의 모습을 옷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다 옷같이 낡아질 것이다』 그는 그 형상을 한 뼘 길이, 측량사의 끈, 오른손, 또는 진리로 부릅니다. 『주의 오른손에 영원한 즐거움이 있으니』 『주님은 한 뼘 길이로 재나이다』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 『주님의 진리는 영원하나니다』 나는 똑같은 눈으로 내 몸도 보았습니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그는 소멸성의 흐르는 물을 피합니다.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다』

그 생각이 주님의 오른손 티끌 속에 감춰진 권능과 왕국으로 들어가 외칠 것입니다. 『주님은 내 생명의 힘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복된 본성의 왕국으로 날아간 사람은 행복합니다! 바울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땅을 걷지만 천국으로 돌아간다』 솔로몬이 같은 세상을 말씀하십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어 어떤 고통도 겪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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