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대한 불평 있나요? (아뇨) 내 말은, 말해도 괜찮다고요. 그래야 내가 뭐라도 안배할 수 있죠. 없어요? 여기 몇몇 외국인이 있네요. 세네 명이요. 그들이 샐러드를 만들 수도 있어요. 아주 쉬워요. 기계에 넣고 썬 다음 『모두 오세요, 식사 시간이에요』 하면 되죠. 우린 비건이니까 쉬워요. 정말 괜찮아요? 왜냐하면 모든 이가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란 걸 알거든요. 하지만 마음이 행복하면 아무거나 먹을 거예요. 그게 비밀이죠. 내가 이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돌아다닐 때는 아무거나 먹어도 항상 맛있었어요. 지금은 먹지 못하는 게 안 믿길 정도로 맛있었죠. 지금은 맛이 달라요.
난 항상 음식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어요.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이 직책을 떠맡지 않았을 때에는 더 잘 먹었어요. 지금은 음식이 넘쳐나죠. 전엔 먹을 게 더 적었지만 맛은 더 좋았어요. 지금은 더 많아도 맛이 없어요. 매일 한두 끼 혹은 한끼 반만 식사를 하는데 그것도 억지로 먹어요. 그게 다죠. 먹는 일은 끝났죠.
질문 더 있나요? 새로 온 사람들은요? 묻고 싶은 게 있나요? (없습니다) 없어요? 정말요?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난 질문을 안 좋아해요. 저번에 난 모든 아이들을 초대했었어요. 질문이 좋을 때도 있어요. 내가 말하지만, 똑똑한 질문일 때만이죠. 그건 좋아요. 여러분이 필요한 게 뭔지 내가 알 수 있죠. 여러분한테 필요한 게 뭔지 단서를 얻어서 내가 말해줄 수 있죠.
난 필요한 게 없어서 여러분의 필요를 몰라요. 여러분이 뭘 필요로 하는 지 알기가 매우 어렵죠. 물질적인 측면에서요. 때로는 알 때도 있지만 항상 그걸 말로 표현할 순 없어요. 여러분이 내면으로 말하는 건 내가 뭔가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뤄질 거예요. 그러니 내가 뭔가를 안다고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내가 내면으로 그렇게 하는 걸 여러분이 보기에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도 할 수 없죠. 사실, 함이 없이 하는 거죠. 내가 하지만 나는 몰라요. 그러니 뭐가 필요하거나 이해가 안 되면 내게 말해야 합니다.
난 똑똑한 질문이 좋아요.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죠. 여러분한테 내가 말할 때 도움이 됩니다. 그게 아니면 나로서는 대화 주제를 찾는 게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내가 가끔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그러는 거죠. 세상 사람들이 무엇에 빠져 허우적대는지 알려는 거죠. 그래야 설명해줄 수 있죠. 하지만 때로는 신문이나 책들도 질려요. 온종일 계속 읽을 순 없죠. 피곤한 일이에요.
하지만 쓸데없는 질문은 좋아하지 않아요. 저번에 난 아이들을 전부 이곳에 초대했어요. 기억합니까? (네) 어제요. 그리고 난 말했죠. 『명상 잘 하고 있나요?』『예』 『질문 있나요?』 『예』 몇몇이 내게 질문했어요. 첫 아이는 『비건 케이크를 직접 만드셨나요?』 했죠. 난 『아니』라고 했어요. 다음 질문은 『보석을 직접 만드세요?』였죠. 『아니, 이건 아니란다』 거짓말을 할 순 없죠. 저기 아래 있는 몇 개는 내가 만들었지만 이건 아니에요. 이건 모조품이죠.
그러다 나중에 아주 중요한 질문을 했죠. 『스승님이 입으신 옷은 직접 만드셨어요?』 오! 아주 좋은 질문이었죠. 드디어 난 말할 수 있었죠. 『그래 내가 만들었어』 그래서 양쪽 다 기뻤죠. 거기 앉아 계속 아니라고 하면서 그들을 실망시킬 순 없으니까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내가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며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의 부모들이 계속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죠. 『스승님은 뭐든 다 하셔』 꿈에서 케이크를 구워 주기도 하고요, 그런 식이죠. 그래서 그들이 계속 이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때로 아이들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좋지 않아요, 그렇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해요. 가령 스승은 필요할 땐 뭐든 한다고요. 여러분한테 정말 필요한 경우에요. 그렇지 않으면 와서 온갖 것을 다 물어요. 『옷을 만드세요?』 『컵을 만드세요?』 그런 것들을 묻죠.
그리고 또 몇몇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말을 할 때 반드시 논리적이고 진실되게 말해야 해요. 본인이 편하자고 과장하지 마세요. 가령 어떤 이들은 아이들을 이렇게 위협해요. 『네가 이런 저런 일을 안 하면 당장 스승님이 오셔서 너를 때릴 거야』 하지만 당연히 스승은 안 오고 때리지도 않죠. 그럼 다음 번에는 아이가 믿지 않을 거예요. 부모를 믿지 않는다고요. 어쩌면 스승도 믿지 않을 수 있어요. 둘 다 좋지 않죠.
혹은 때로 이런 약속도 합니다. 용감하거나 착하게 굴거나 얌전히 행동하면 스승님이 와서 이런 저런 천국에 데려가실 거라고요. 지금 자러 가면 스승님이 데려가실 거라고 하죠. 그럼 아이는 기대에 부풀어 신이 나서 자러 갑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스승님이 아무데도 안 데려가셨어』라고 하죠.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그들이 일요일에 여기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왜 날 이런저런 곳에 안 데려가셨어요?』 나는 『그러겠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하죠. 그럼 『내가 자러 가면 스승님이 데려가 주신다고 엄마가 그랬어요』 합니다.
난 말하죠 『너희 엄마가 말하는 건 다르구나.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래서 나는… 약간은 말을 바꿔야 합니다. 『너희 엄마 말은 네가 일찍 자러 가고 착하게 행동하면 아마도 언젠간 스승님이 데려가 주실 거라는 말이란다』 「아마도」라고 해야 해요. 안 그럴 수 도 있으니까요. 아이의 지혜안이 얼마나 큰지 모르니까요. 아직 닫혀 있을 수도 있죠. 그들이 아이라고 해서 완전히 순진무구하고 업이 깨끗한 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끔찍한 아이들」을 수없이 목격하는 거죠. 「끔찍한 아이들」이요. 진짜 있어요. 특히 텔레비전, 신문, 책, 서점에 범죄폭력 기록들과 장면들과 뉴스가 넘쳐나는 오늘날엔 더욱 그렇죠.
게다가 아이들이 늘 그런 것들을 도서관 같은 데서 무료로 쉽게 접할 수 있죠. 가서 신문을 읽을 수 있어요. 폐기된 것도 읽을 수 있죠. 게다가 텔레비전은 아이들이 혼자서도 켤 수 있으니 결국 모든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엔 십대 폭력배들도 있어요. 미국이나 다른 곳에서 큰 골칫거리죠. 때로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총을 겨누는 등 온갖 짓을 합니다. 사회로부터 나쁜 걸 배웠기 때문이죠. 오, 끔찍해요.
때로는 우리 아이들도 입문 후에 밖에 나가서 다른 아이들과 고기 같은 걸 교환합니다. 때로 그들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들을 항상 지도하고 보살피며 함께 명상하는 부모가 필요한 겁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이런 폭력적인 세상에서 안내자 없이 살아남는 건 정말 어렵기 때문이죠. 선생님도 늘 아이들을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은 학교에 와서 몇 시간 동안 가르치기만 하다가 가니까요. 그러고 나면 그들은 자유죠. 게다가 부모는 바쁩니다. 무슨 세상이 이런가요! 심지어 아이들이 살아남는 것조차 힘들어요. 그러므로 오늘의 아이들은 어제의 아이들이 아녜요.
그리고 일부 아이들은 전생의 나쁜 인상들을 많이 가져옵니다. 아직 완전히 차단되거나 지워지지 않았죠. 그래서 많은 아이들은 나면서부터 나쁩니다.
그거 알아요? 신문에 세 살 난 남자애가 6개월 된 여동생을 죽인 안 좋은 뉴스가 실리기도 했죠. 그 아이는 동생을 들고 죽을 때까지 때렸어요. 그리고 나중에 경찰이 어떻게 했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인형을 들고 똑같이 하며 말했어요. 『죽어, 그만 죽어』 그는 아기를 증오했어요. 세 살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여동생을 증오했어요. 아이는 어떻게 했는지 보여주기까지 했어요. 『죽어, 죽어』 하면서요. 일말의 후회도 없었죠. 그처럼 폭력적인 걸 표현했던 거죠. 그러니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어요.
많은 아이들이 매우 총명한 것도 봤죠? 더러는 네 살 정도인데 천재적이죠. 가령 모차르트나 다른 천재 과학자들이 그래요. 최근 한 인도 소년은,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17살이에요. 그런데 최연소로 대학에 입학했어요. 그 뉴스 알죠? (의사예요) 예, 의사로서…(의학) 17살밖에 안 됐는데요. 아주 똑똑합니다. 올해인가 오래 전인가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최연소 의사일 거예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는 아주 어린데 천재였던 걸로 기억나요. 예, 공인된 천재죠. 인도 소년이에요.
그러니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꼭 사회의 영향을 받게 된다고는 할 수 없어요. 많은 경우엔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 그렇진 않아요. 안 그래요? 그러니 사실 아이들이라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다 순진무구한 건 아녜요.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골머리를 앓고 교사들도 어려움을 겪죠. 부모 앞에서는 아주 얌전하지만 뒤에선 나쁜 짓을 해요. 그런 식이죠. 그래서 부모들도 모릅니다. 그런 경우를 한둘은 알아요. 이따금 내 앞에선…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 아주 작은 소녀를 아는데 내 앞에선, 난 그 아이가 나쁜지 몰랐죠.
하지만 뒤에서 아무한테나 온갖 말썽을 다 부렸죠. 게다가 어찌나 처신을 잘 하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엔 사람들 말을 믿지 않았어요. 오랜 시간이 걸렸죠. 거의 일 년이나 뒤였죠. 날 속이기까지 했어요. 여섯 살 밖에 안 됐는데요. 거의 일곱 살이 될 때까지 6년 간 나를 속인 거예요. 내겐 정말 긴 시간이죠. 하지만 물론 난 바쁘죠. 항상 점검하고 그 아이를 자주 보는 건 아니어서 그리 잘 알진 못했죠. 아이들이 다 순진한 건 아녜요. 그러니까 내 말은, 아이들이라고 늘 스승을 보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아이들이 매우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네, 대부분은 순수하죠. 하지만 다 그렇진 않아요. 그들이 다 천국에서 바로 내려온 건 아니에요. 일부는 낮은 곳, 낮은 등급의 차원에서 올라왔어요.
그 경우에 그들의 기억, 그들의 반응, 업장은 평범한 아이들이나 높은 차원에서 내려온 아이들과는 확연히 달라요.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스승을 쉽게 보진 못해요. 많은 경우 보긴 하지만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아이에게 잠든 다음 스승이 올 거라 약속하면 난 장담 못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말은 반드시 논리적이어야 해요. 그럼 그런 일이 일어나겠죠. 안 그럼 『어쩌면』 『그럴 것 같은데 잘 모르겠구나』 『확실치 않아』라 해야죠. 안 그러면 여러분에 대한 신뢰를 잃고 스승에 대한 신뢰마저 잃게 될 거예요. 아이들에게 좋지 않죠. 됐어요. 그런 거예요.
날 충분히 본 것 같으니 내일 만납시다. 난 매일 올 겁니다. 적어도요. 됐나요? 전엔 사람들이 새로 올 때마다 와서 그들을 만나곤 했어요. 하지만 그냥 여기 와서 그들을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그런 식으로 노인들도 날 볼 수 있죠. 그게 더 편합니다. 어쨌든 일단 왔으니… 하지만 문제는, 내가 여러분을 보러 오면 내가 뭔가 말하길 기대하지만 늘 말할 순 없죠. (예) 아닌가요? 그냥 여기 앉아서 이렇게 보죠. 나중에 둘러볼게요. 여러분을 보내긴 싫지만 그냥 이렇게 있는 건 아주 부끄럽죠. 여기 영원히 앉아 있을 순 없죠. 뭘 해야 할까요? 뭐 할 게 있나요? 여러분이 말해보세요.
(잠깐 그냥 계셔주세요) 잠깐 있어 달라고요? 오 세상에, 난 수줍음을 많이 타요. 모르는군요. 그럼 뭘 할지 말해봐요. (노래 불러주세요) 노래요? 내 노래는 이미 다 들었잖아요. (함께 명상해 주실래요?) 함께 명상해 달라고요. 오늘은 안 돼요. 다른 날에 할게요. 벌써 끝났으니까요. 가끔 와서 여러분과 함께 명상할게요 매일은 안 되고요, 알겠죠? 여러분은 일은 마쳤으니 이제 자러 가도 됩니다. 매일이 똑같을 순 없어요. 너무 따분하고 단조롭겠죠…내게는요. 예, 물론이에요. 난 모조 새가 아니에요. 여러분이 태엽을 감는다고 노래가 나오진 않죠. 안돼요.
난 살아남아야 해요. 여러분에게 봉사하기 위해 난 살아남아야 하죠. 내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면 난 더 이상 영감을 못 얻고 쓰러지고 말 거예요. 이해하겠어요? (예) 여러분 때문에 난 융통성을 가져야 해요. 나 자신 때문만은 아녜요. 여러분 때문이죠. 이해되나요? 이해돼요? (예) 좋아요. 어쨌든 여러분이 즐겁도록 다른 걸 생각해봐야겠어요. 하지만 여러분은 여기서 충분히 즐겁지 않았나요? 노래 등을 할 필요 없어요. 여긴 나이트클럽이 아니죠. 알다시피 늘 달라요. 뭔가 할 일이나 읽을 것을 직접 찾아봐요. 하지만 여기서 뭘 읽고 싶진 않을 것 같아요. 집에서 읽으면 되죠?
뭔가 읽고 싶어요? (저희는 잡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어 책을 읽고 싶나요? 여기 중국어 책들이 많이 있어요. 영어 책들도 많고요. 뭔가 읽고 싶어요? (아뇨) 잡지를 사줄까요? (아뇨) (잡지 말고요) 아님 뉴스잡지 필요해요? 지금 잡지를 갖고 있나요? 요즘 뭘 가장 좋아하나요? (스승님 사진이요) 무슨 사진요? 오, 내 사진, 그건 어디에나 있잖아요. 내면으로 말이에요. 가장 인기 있는 게 뭐죠?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입니다) 또 뭐가 있죠? (이야기들이요) 이야기요. 이번에 가장 좋았던 건 뭐죠? 뭐가 가장 좋았죠?
아직 안 읽어 봤나요? (아직 안 읽어 봤습니다) 아직 안 받았어요? (막 발행됐습니다) 읽어 본 사람 있어요? (예, 피라미드의 비밀에 관한 스승님 말씀입니다) 피라미드가 가장 좋아요? 또 뭘 좋아하나요? (『당신은 모르실 거야』요) 『당신은 모르실 거야』? (예)
이번엔 뭔가요? (몬테 카를로로 차를 모셨죠) (네, 네, 몬테 카를로) 몬테 카를로요? 그건 여러분이 모르는 비밀이어야 하잖아요? 여러분이 거기 없었다면 확실히 모르겠죠. 또 뭐가 좋은가요? 정말 좋아하는 건… (감로법어요) 감로법어요? (예, 짤막한…) 짤막한 글이죠. 번역이 잘 되어 있다면 좋을 겁니다. 또 뭐죠? 그게 다예요? (잡지가 매달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잘 나옵니다) 매달 좋아진다고요? 네. 모든 것은 경험이 쌓일수록 나아지죠. 다른 일들도 그렇죠. 아마 번역도 나아지겠죠. 더 시간에 맞춰 나오고요. 뒤에서 내가 밀어 부칩니다. 뒤에서 밀어주죠. 전에는 시간이 더 걸리곤 했어요.
지금은 입문자들이 더 많아졌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수행을 더 할수록 더 성숙해지죠. 희생 정신도 더 커지고요. 더 자진해서 일을 하려고 합니다. 더욱 더 사랑으로 하고 더 기꺼이 하려고 하죠. 그래서 나아져요. 물론이죠. 시간이 갈수록 성숙해지죠.